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그들은 구원에 이르렀나_〈파주〉
    공간/영화 2022. 6. 9. 21:27

     

     

     

     

    파주

    Daum영화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세요!

    movie.daum.net

     

     

     

    산업의 규모로 미루어 보건대 사람들은 분명 여행을 좋아하거나, 또는 스스로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여행의 매력적인 점은 완결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일상의 시간과는 달리 여행의 순간은 프롤로그, 출발, 사건, 도착, 에필로그가 외부적인 요인으로 명확하게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파주는 외견상 얼핏 여행의 구성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 같습니다. 은모가 탄 택시가 안개 낀 자유로를 달리는 동안 파주행 표지판을 비추면서 시작하는 영화는 은모가 친구의 오토바이 뒤에 탄 채 화창한 도로를 달리며 파주를 떠나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영화의 시선은 여행객의 피상적 시선이 아닌 거주민, 현지인, 원주민이 가진 피투적이고 진득한 시선을 띠고 있습니다. 얼핏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연상하게끔 만드는 이러한 구성은 여행보다는 귀향의 정서에 가깝습니다. 

     

    박찬옥, 파주

     

     

     

     

     

     

    1. 도피의 공간, 생존의 공간, 그리고 치밀한 시선 

     

    지역의 이름을 제목으로 차용한 영화는 실제 공간이 지닌 깊이에 끌려가고는 합니다. 그러나 〈파주는 공간을 철저하게 장소로만 활용할 뿐입니다. 배경이 주는 분위기를 활용하는 것은 오롯이 감상자의 몫입니다. 일상에서 겪는 사건들의 배경처럼 공간은 단지 우연하게 주어질 뿐입니다. 마치 직장이 그곳에 있기에 거기에 사는 것처럼, 사건이 있기에 파주가 있습니다.   

     

     

     

     

     

     

    〈파주는 안개와 같이 일정한 밀도를 유지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얼핏 성긴 듯이 보이는 그 회색의 연무 속에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치밀한 집착이 숨어있습니다. 아기가 끓는 물을 뒤집어쓰는 장면부터 가스 폭발로 인한 화상이 온몸을 뒤덮은 시체의 모습까지 영화는 어떤 주저함도 없이 차분하고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박찬옥 감독은 철거대책위원회, 일명 철대위를 그려낼 때도 이러한 차분함을 유지합니다. 이 무렵의 영화들과는 달리 감독은 철거 투쟁을 비출 때 이원론적인 잣대로 재단한 장면만을 추출하여 편집하는 편한 방법을 쓰지 않습니다. 철거 투쟁의 과정을 치밀하고 정성스럽게 담아내고 있지만 영화는 투쟁의 대의에 대해서는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영화는 굵직한 사건들을 밟고 선 채로 개인에 대해 지독하게 매달립니다.  

     

     

     

    2. 죄와 불 

     

    〈파주의 몇 가지 장면은 불이 지닌 파괴적인 심상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활용합니다. 첫 번째 불은 중식이 선배의 아내와 성관계를 하는 도중 선배의 아이를 다치게 만듭니다. 중식의 사상적 동지면서 동시에 첫사랑 이기도 한 여자의 아이는 끓는 물에 화상을 입고 큰 흉터와 함께 손가락을 잃게 됩니다. 두 번째 불은 은모가 실수로 손상시킨 가스관 때문에 발생해서 중식의 아내를 죽게 만들고 신혼 생활을 끝장냅니다. 이로 인해 중식은 파주에서 은모와 단둘이 살게 됩니다. 세 번째 불은 중식의 주장으로 사용하게 된 화염병입니다. 건물을 부수려는 굴착기를 막기 위해서 중식은 구속의 위험을 무릅쓰게 됩니다. 불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은 그동안 화염병을 수없이 던져왔을 중식뿐만이 아닙니다. 중식의 아내이자 은모의 언니인 은수는 어릴 때의 화상 흉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불은 죄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영화에서 직접 조명하지는 않지만 철거반 측이나 철대위 측이나 모두 비슷하게 불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불이 남긴 상처는 인물들을 마치 원죄와도 같이 속박합니다. 

     

    유일하게 불의 기억이 없는 인물은 은모입니다. 동시에 은모는 영화에서 가장 주체적인 행위자이며 동시에 개척자입니다. 은모는 주위의 시선이 어떠하든 가출을 하고, 인도로 여행을 떠나고, 나이트클럽을 외상으로 가는 젊은이입니다. 웨이터에게 머리를 두들겨 맞아도, 차량 납치를 당했다가 풀려나도, 살던 집이 재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일지라도 은모는 좀처럼 심각하지 않습니다. 은모가 뚝뚝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지점은 오롯이 본인의 감정을 대할 때입니다. 그런 은모와 은모를 바라보는 관객은 건물 위에서는 화염병을 던지고 건물 아래에서는 물대포를 쏘는 치열한 투쟁의 현장을 뚫고서 은모는 중식을 향해서 도도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은모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언니의 사망에 대한 진실이고 그것은 중식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이르면 은모 역시 불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임이 드러납니다. 은모는 알지 못하는 사실이지만 언니가 사망한 가스 폭발의 원인은 본인이 들고 있던 가위에서 비롯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는 소방차가 출동하는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이를 바라보는 은모의 표정은 순진무구해 보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직감한 듯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은모가 중식을 보험 살인으로 신고하면서 결과적으로 은모는 영영 그 원죄에서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은모에게 있어 불은 은모가 원하는 모든 결과를 가져다주는 수단이 됩니다. 굳이 따지자면 은모는 원죄, 조금 더 공격적으로 생각하자면 사유의 부재를 비웃는 것만 같습니다. 

     

     

     

    3. 연세대 사태부터 용산 참사까지 

     

    먼저 밝히자면 2009년 10월에 개봉한 이 영화는 2009년 1월에 발생한 용산4구역 철거현장 화재 사건에 영감을 얻은 영화가 아닙니다. 이는 감독이 직접 인터뷰를 통해 못 박은 사실이고 시나리오 제작 시간으로 추측했을 때에도 감독의 말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소재 때문인지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며 개봉 몇 달 전에 벌어진 용산 화재를 연상합니다. 제작자의 의도와 관객의 해석은 구분 지을 수 없는 영역이라지만 이 영화는 분명 사건이 아닌 사람에 대한 영화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인 셈이지요. 

     

     

     

     

     

     

    그럼에도 중식이라는 개인이 겪은 일에 학생 운동 세력의 소멸이 겹쳐 보이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시간대인 1996년부터 2003년까지는 직선제를 이루어낸 학생 운동 세력이 교조적 이념으로 인해 끝을 맞이해가던 시대입니다. 그중에서 96년 한총련 사태, 일명 연세대 사태는 대중과 학생 세력이 완전히 유리되었다는 사실을 표면화시킨 사건입니다. 연세대 사태에 연루되어 시작된 중식의 도피 생활은 그를 끊임없이 도피의 사건에 몰아넣습니다. 7년의 시간이른 2003년 철대위의 위원장을 맡은 중식은 자신의 구속을 감수하고 화염병을 선택합니다. 중식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기반으로 어떤 청사진을 그렸을 것입니다. 결국 그 끝이 의도한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요. 철거를 막지 못한 채 보험 사기 혐의로 감옥에 갇힌 중식의 이상은 좌절되고 삶은 파멸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중식이 받은 구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4.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 그것은 목자의 관점이다.  

     

    〈파주는 기독교적 소재가 많이 들어간 영화이기 때문에 종교를 잘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영화의 큰 소재에서 순전히 남의 말을 빌려야만 하는 부분이 아쉬울 따름입니다.선악의 저편번역한 박찬국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니체는그리스도 교인들이 겸손과 절대적인 맹신,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연민을 인간이 구현해야가치로 본다’고 합니다. 사회 운동에 몰두하는 중식의 정치적 성향으로 추측할유물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크고 결국 중식은 신앙에 부정적인 입장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도 중식은 교회 생활을 하면서마지막 구절,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연민’을 철저히 이행하는보입니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곁에서 싸우며 자신의 평생을 보내는 중식은 모든 죄를 뒤집어쓴 예수처럼 행동하죠. 이렇게 몸부림쳐온 중식은 은모가 자신을 보험사기로 신고했을스스로를 교만했다고 말하며 은모가 연루된 죽음에 대한 비밀을 지키겠다고 말합니다. 99마리의 양보다마리의 잃어버린 양에 신경을 쓰겠다는 중식의 말이 얼핏 일종의 극복과 성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이러한 중식의 마음가짐을 기독교적 부활이나 성숙으로 보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 중식은 늘 약자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우는 성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중식은 친한 형의 아내를 탐하고 처제를 탐하는 인간이기도 합니다. 구속된 선배의 집에서 지내다가 아이의 화상에 죄책감을 느끼고 파주로 도망칩니다. 파주가 도피의 공간에서 정착의 공간으로 바뀐 것은 중식이 결혼했을 때가 아닌 중식의 아내가 죽고 가출에서 돌아온 처제 은모와 살아가는, 남들이 수군거리던 바로 그 순간입니다. 하지만 모든 순간이 그러하듯 그 순간 역시 끝은 정해졌고 은모는 중식을 떠납니다. 그동안 중식은 나름의 관성으로 철대위의 위원장이 되고 숭고한 희생이라는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식이 힘든 싸움을 쫓아다니는 이유를 물은 은모에게 중식은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는 진실을 알아야겠다는 은모에게 키스합니다. 이를 뿌리치고 달아나던 은모는 본인의 바지 단추가 풀렸음을 확인한 후 사색이 되며 중식을 보험 사기로 신고합니다. 돌아온 은모가 중식이 매달리던 대의를 모두 망쳐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중식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 본인의 예수 흉내를 끝내주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은모는 중식이 화염병을 던진 대가로 구속되는 순교가 아닌 자기 아내를 죽인 보험사기범으로 구치소에 들어가는 치욕스러운 결말을 만듦으로써 그가 뒤집어쓴 예수의 탈을 벗겨줍니다. 이러한 구원은 은모의 오해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입니다. 결국 우리는 전지전능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서로를 오해하게 되지만 동시에 그런 한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중식은 99개의 일에서 단 한 명의 은모를 소중히 여기게 될 겁니다. 흥미롭게도 중식은 은모를 위해 은수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지키겠다고 말했지만 은모 역시 중식이 자신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비밀을 자의적으로, 또는 그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킬 것입니다. 이 둘의 쌍생적 구원은 서로의 구원을 영영 함구하게 됨으로써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그 결과 위원장을 잃은 철대위는 와해되고 개발은 진행될 것이지만요.  

     

     

     

    5. 은모가 마주할 질문 

     

     

     

     

     

     

    2009년에 개봉한영화는 훌륭한 만듦새에 비해 흥행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가 2019년에 나왔다면 흥행에 성공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지만 아마 그럼에도 결과가 바뀌었을같지는 않다는 결론입니다. 마찬가지로 2019년의 관점에서도 훌륭한 영화인가, 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다고 말하겠습니다. 중식에게 거한 아침상을 차리는 언니의 모습을 본 후 노예가 된 거야, 라고라고 중얼거리는 은모의 독백은 영화에서 몇 안 되는 웃음이 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웃음 속에는 어딘가 개운치 않은 가시 뼈가 숨어 있습니다. 일단 나이트클럽의 사장이 관여하던 파주의 개발은 잘 끝날 것입니다. 저는 문득 파주를 떠나는 은모에게 그 사실이 누군가의 화상 자국처럼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은모는 노예가 되지 못하고 투사가 되겠지요. 하지만 모든 대의라는 것들이 이제 중식의 손을 떠나 은모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었을지라도 저는 친구의 오토바이 뒤에 타서 파주를 떠나는 은모의 아리송한 표정을 긍정하고 싶습니다. 2022년의 제가 가는 길처럼, 그 또한 양의 길일 테니까요.  

     

     

    20220609



     

     

     

     

     

     

     

    글을 마무리할 즈음 감독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 인터뷰로 인해 저는 확실하게 제가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에 박찬옥 감독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MBC연예 | 만나면 좋은 친구 MBC

    TV 보다 더 큰 세상, iMBC

    m.imbc.com

      

     

    중식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관점이 좋은 글입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