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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이차원에 살지 못한다_<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공간/영화 2022. 2. 22. 19:14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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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률,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몇몇 리뷰에서 어렵고 예술적이라는 수식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는 이 영화를 심오한 은유나 감독의 예술관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습니다. 어떤 창작물을 설명할 때 나오는 '심오'나 예술'이라는 단어는 제게 달갑지 않은 편견을 불러일으킵니다.

     

    저는 이 영화의 이야기가 담은 소박한 적확성에서 오는 원초적인 쾌감을 좋아합니다. 간결하고 섬세한 극의 장치들이 영화가 담은 진솔한 공간에 투영되어 의미의 확장이 일어날 때의 전율은 덤이지요. 종합하자면 일상을 피하지 않은 창작물들이 가진 안락한 은유를 좋아하는 셈입니다. 물론 이러한 즐거움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지만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영화는 윤영과 송현의 군산에서의 아리송한 여행을 담은 <군산>과 군산으로의 여행을 떠나기 전 신촌과 연희동을 중심으로 일어난 윤영과 송현의 만남을 담은 <거위를 노래하다(영아, 咏鵝)>라는 두 부분이 결합된 구조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시간을 역순으로 구성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서술적 속임을 위해 부분적으로 시간 순서를 비튼 작품은 같은 군산에서 촬영한 영화인 <남자가 사랑할 때>를 비롯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처럼 작품 전반부에 나중의 일 <군산>을 배치하고 작품의 후반부에 이전의 일이자 군산 여행의 계기가 되는 <거위를 노래하다>를 배치하여 통째로 시간을 바꾼 과감한 구성은 흔치 않습니다.

     

     

    감독의 언급에 따르면 어떤 기억을 떠올릴 때의 순서에 따라 영화의 전후반을 구성했다고 합니다. 이런 구성 덕에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 두 개의 이야기로 거듭나게 됩니다. <군산>과 <거위를 노래하다>라는 두 이야기의 몽타주를 통해 관객은 영화가 끝난 후 스크린 밖의 진테제를 이끌어냅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단순한 이음이 관객의 시선을 촉매로 하여 새로운 화합물로 거듭나는 셈이지요. 작품의 일상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창작자와 소비자는 이런 몽타주를 즐기는 사람들이지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에서 부각되는 제삼의 시선은 영화 외적에서만이 아니라 영화 내에서도 큰 의미를 갖습니다. 

     

    영화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군산>은 윤영과 송현의 여행기를 담고 있습니다. 뜻을 모아 함께 군산으로 여행을 온 윤영과 송현은 여행 내내 어딘가 어긋나기만 합니다. 성적인 긴장감이 흐르던 둘의 관계는 어쩐지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지날수록 서먹해지고 멀어집니다. 이들의 관계가 어긋날 때에는 항상 제삼자가 존재합니다. 칼국수 집 주인과 대화를 나눌 때 윤영과 송현의 신호는 어긋나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민박집 사장이나 그의 딸 주은의 시선이 존재하는 한 그들의 관계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윤영과 송현의 관계에 있어 제삼자가 새로운 축으로 등장하는 순간 그들은 교차하는 상태가 아닌 어긋난 상태임이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화의 후반부인 <거위를 노래하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에 집중하고자 하는 그들에게 과거를 공유하는 제삼의 기억은 무겁기만 합니다. 신촌의 마이시크릿메이트나 연래춘에서 제삼자의 시선이 부각될 때마다 윤영과 송현의 관계는 한없이 어긋남을 실감합니다. 길이 끝났다는 것은 길의 끝에 도달할 때까지 알 수 없기에 과거에 얽매인 관계에 지친 윤영과 송현이 문득 군산으로 떠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그곳의 민박집은 늘 CCTV로 관찰되고 있기에 제삼의 시선이 언제나 개입한다는 사실까지는 몰랐겠지만요. 

     

     

     

     

     

     

    이차원적으로 영화의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서로 교차의 형태를 지닙니다. 이차원으로 볼 때는 만나는 것처럼 보여도 삼차원으로 본다면 두 개가 만나지 않고 높이의 차이를 보이며 교차합니다. 높낮이에 관한 이 세 번째 축은 시간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감정, 또는 제삼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유독 영화에서는 세 명의 관계가 자주 보이는데 이렇게 관계가 입체적으로 전환될 때마다 그들은 충돌이 아니라 교차임을 실감합니다. 꼬인 위치라고도 불리는 교차는 곧 어긋남입니다. 교차는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없는 소극적인 상태입니다. 

     

    어긋남과 충돌을 구분 짓는 것은 시간의 일치성이지요. 관찰자는 그저 두 개의 점이 각자의 운동량을 보존한 채 고고히 지나쳐버린 궤적을 마주할 뿐입니다. 누군가와 충돌하기를 바라는 것은 확률적으로 봤을 때 어쩌면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삼의 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실패로 이끄는 셈이지요. 우리의 탄생이 죽음으로 결말지어진 것처럼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역사의 거대한 광휘 앞에 선 개인의 작은 그림자에 주목합니다. 영화의 제목이자 1부의 배경이 되는 군산은 식민지 조선의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일제가 내항과 적산가옥을 남기고 패망한 이후 군산에는 거대한 규모의 미군기지와 비행장이 들어섰고 오늘에도 전투기의 굉음은 군산의 하늘을 뒤덮고 있습니다. 영화가 담는 인물들 역시 동북아의 지정학적 관계를 투영하는 듯합니다. 언제나 기시감을 느끼는 윤영, 일제 강점기의 역사에 분노하고 조선족의 권익을 위해 노력하지만 동시에 일본의 문화를 좋아하고 조선족으로 오해받자 과하게 화를 내는 송현, 일본에 과거를 묻고 군산에서 민박집을 하는 재일교포 부녀, 조선족을 증오하지만 조선족 가정부를 고용하고 성적인 관심을 느끼는 윤영의 아버지와 같은 인물들은 양가적인 우리의 일상에 이질감 없이 녹아듭니다. 

     

    그러나 저는 이 영화가 동북아의 민족주의 국가들과 그 역사에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를 담기 위해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설령 감독이 그러한 의도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그런 거시적인 문제가 내포하는 사명감은 제게 어쩐지 지루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무엇보다 이데올로기를 위한 영화라는 딱지를 붙이기에 이 영화는 너무나 사적이고 섬세합니다. 감독의 성장 배경에서 얻어진 경계 위의 시선이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경험을 효과적으로 회고할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을 이끄는 덕입니다. 극 중 윤영이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중도라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경계에 놓여 있는 상태이지요. 과거와 미래 사이에 놓인 경계 위에 서있는 우리 모두가 영화 상영 시간 동안만은 잠시나마 그 시선을 공유하는 착각에 빠질 수만 있다면 이 영화의 의미는 제게 충분한 셈입니다. 

     

     

     

     

     

     

    영화에는 어딘가 본 듯한 장면과 대사가 계속해서 나옵니다. 거기에 더해 그러한 기시감을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라는 대사를 통해 노골적으로 강조하죠. 의미의 탐색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특정한 패턴을 도출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마 공통점을 구심점으로 무리를 지어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긴 본능이겠지요. 그러나 울창한 숲과 맹수가 모두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아래 뒤덮인 오늘에도 우리는 공통점을 찾아 서로를 묶고 분류하여 친구와 적을 구분하려고 합니다. 조선족인지 중국인인지, 좌파인지 우파인지, 친일인지 반일인지, 섹스를 하는 사이인지 아닌지 구분 짓기 위해서 우리는 기억을 분류하고 주위의 세상에 히스테릭하게 이름표를 붙이곤 합니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실패했습니다. 영화가 바라보는 희망은 기억 너머의 망각에 있습니다. 윤영이라는 인간에게 신뢰를 가지고 도움을 준 신촌 굴다리 앞 약국의 약사는 나중의 찾아온 윤영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죠. 치매를 앓는 윤영의 아버지의 기억은 머지않아 망각될 것이고 그때서야 윤영은 아버지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게 됩니다. 망각은 과거로부터의 해방입니다. 망각하지 않고서는 손을 잡을 수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윤영의 망각은 아직 요원합니다. 하지만 저는 윤영의 상황을 절망하지 않습니다. 만주, 혹은 남한이라는 공간으로 구체화된 우리의 피투성이 우연과 찰나를 거쳐 윤동주와 조선족 가정부의 몽타주로 이끌어지는 것을 영화는 고요하지만 강하게 믿고 있습니다. 윤영이 민박집 주인의 필름을 훔친 것처럼 언젠가 윤영은 다시 시를 쓰게 될 날을 맞이할 겁니다. 

     

     

     

     

     

     

    영화 전후반의 수사적 대구(對句)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어떠한 평행 가정을 통해 희망을 담는다면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끝이 정해져 있는 여정임에도 그것을 통해 희망을 꿈꾸고 있습니다. 영화 편집상 뒤에 나오는 과거, 신촌의 모텔 골목에서 그들이 이루던 과거의 불완전한 소통은 그들이 군산이라는 도피처를 향해 같이 출발하는 순간 끝나게 됩니다. 결국 신촌 일대와 군산은 별반 다르지 않은 공간입니다. 관계는 실패로 끝나지만 영화는 이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관객들은 여행의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영화는 기분 좋은 여행의 출발로 끝납니다. 그 걸음은 마치 우리의 삶이 죽음을 향한 여정임을 받아들이는 순간처럼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걷는 각자의 여정은 본질적으로 이해받을 수 없기에 고독합니다. 영화에서 윤영이 겪는 세 번의 도피, 군산으로의 도피, 섬으로의 도피, 야경이 잘 보이는 치과로의 도피는 모두 실패로 끝납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가 비관적인 시각을 가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도적인 도치를 통해 영화의 결말에서 잠시나마 교차하는, 곧 어긋날 테지만, 그러기에 아름다운 찰나를 꿈꾸기 때문이겠지요. 관객은 결국 윤영이 치과 창문으로 야경을 보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윤영이 과거의 기억을 구현하는 것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대신 <군산>과 <거위를 노래하다>의 경계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신촌 명물거리부터 시작해 세브란스 병원을 넘어 멀리 연세대학교 교정 뒤편의 안산까지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아름다운 야경이지 않습니까? 

     

     

     

     

     

     

    제가 이 영화를 여러 번 감상한 이유는 영화가 공간을 담는 방식 때문입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공간이 담은 매력을 보이기 위해 서사를 구성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서사가 진행되는 장소의 매력을 다각도로 보여줍니다. 운이 좋게도 영화가 다루는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사람이라면 이 즐거움은 배가 될 것입니다. 굳이 군산에 방문해보지 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신촌의 잎사귀 치과에서 사랑니를 뽑았거나 연희동 주택가를 걸어본 사람, 술에 취해 신촌역 부근의 모텔촌을 헤매던 사람, 윤동주 문학관에 방문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가 담은 공간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추측으로는 매우 붐비는 상권인 신촌 굴다리 앞 창천교회 맞은편에서 조선족 집회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이른 아침 시간대를 선택해야 했을 겁니다. 영화를 촬영하던 2018년의 여름 저는 아침까지 술을 마시고 신촌 거리를 헤매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어쩌면 그때의 순간을 기억 저편에서 스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상상을 하면 어쩐지 영화에 대한 애정이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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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제가 쓴 글은 아니지만 영화와 관련해서 같이 읽으면 좋은 글입니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감독 장률을 만나다

    [어떤人터뷰]

    www.huffingtonpost.kr

     

    양기연님이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에 남긴 코멘트 - 왓챠피디아

    실패 위에서 다시 노래하는 희망. (스포일러) . 이 영화의 제목은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이다. 영화는 윤영이 군산에 다녀온 뒤 그토록 보고 싶다던 잎사귀치과에서 내려다보는 신촌 야경을 카

    pedia.watch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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