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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영화 연말 결산(3), 미국 영화 샐러드: 모던 클래식_갱스 오브 뉴욕, 데어 윌 비 블러드, 아이리시맨, 조디악
    공간/영화 2022. 1. 1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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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미국 영화 샐러드: 모던 클래식

     

     

     

    갱스 오브 뉴욕, 데어 윌 비 블러드, 아이리시맨, 조디악

     

     

     

    저는 역사에 관한 책을 즐겨 읽는 편입니다. 특히나 에릭 홉스봄의 책들에 묘사된 19세기와 20세기를 지나는 팽창의 시기에 큰 매력을 느낍니다. 점점이 떨어진 도시에 철도가 이어지고 증기로 만든 혈관을 타고서 황금과 독이 퍼져나가 결국 황제와 제후들은 사업가들에게 세상을 빼앗기고 농민들이 공업 노동자로 바뀌는 시대를 다룬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모던 클래식 영화 또한 좋아합니다. 

     

    갱스 오브 뉴욕은 19세기의 뉴욕을 다룬 영화입니다.

     

     

     

    훌륭한 서사, 매력적인 인물, 아름다운 배경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마치 한 편의 거대한 연극을 보는 듯한 "갱스 오브 뉴욕"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도시인 뉴욕이 먹고 자란 피를 근사하게 표현한 영화입니다. 소재는 전혀 다르지만 이 영화의 톤은 베즈 루어먼 감독의 "물랑 루즈"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현실적이고 담담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선호하나 "갱스 오브 뉴욕"은 이런 편식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여러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인 아메리칸이 되어가는 과정은 영화에서 폭력과 사랑으로 극화됩니다.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지만 도입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훌륭한 완급 조절을 보여주기 때문에 시대와 함께 격화되는 감정을 물 흐르듯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갱스 오브 뉴욕"을 보고 나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의 역사를 찾아보는 것 또한 즐거웠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U2의 노래 'The Hands That Built America'가 화면과 어우러져 큰 여운을 남깁니다.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중요하게 나오는 이 영화의 엔딩에서 아일랜드 밴드인 U2의 음악이 나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합니다.  

     

    "갱스 오브 뉴욕"이 항구의 이민자들의 이야기라면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개척지의 종교인과 사업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이렇게 입체적인 매체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미국의 황량한 개척지에서 석유를 개발하는 과정에 담긴 이야기를 다루는 "데어 윌 비 블러드"는 검은 황금을 두고서 석유업자와 종교인의 대결을 흥미롭게 담았습니다. 토착민이 제거된 넓은 벌판에서 탐욕을 칼날 삼아 벌이는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은 끝없이 부푸는 풍선을 보는 것처럼 긴장됩니다. 인물에 대한 묘사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매력은 황량하게 묘사된 탐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정착촌은 물론이고 중세의 성을 희극풍으로 해석한 듯한 석유업자의 대저택에서도 황량함이 유령처럼 배회합니다. 

     

    단언컨대 "데어 윌 비 블러드"는 무시무시한 영화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갱스 오브 뉴욕"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도 무시무시했지만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는 정말 대단하다는 표현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맞서는 폴 다노가 단 한 치도 밀리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이 영화를 뒤틀린 버디무비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반면 "아이리시맨"은  "데어 윌 비 블러드"보다 훨씬 많은 수의 인물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고독한 느낌을 주는 영화입니다.

     

     

     

    마치 GTA 시리즈를 하는 듯한 기분입니다.

     

     

     

    "아이리시맨"은 한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일대기를 다룹니다. 개인적으로 짧은 식견 탓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에 큰 감동을 받지 못했는데 "아이리시맨"을 보고 나서 "대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추측을 할 수 있었습니다. 1시간 20분짜리 영화도 지루한 경우가 많은데 "아이리시맨"의 3시간 24분은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긴 상영 시간과 영화에서 오가는 광대한 지역 자체의 규모에서 오는 여운도 대단합니다. 왜 사람들이 마틴 스코세이지를 거장이라고 부르는지 이 영화를 통해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같은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이 마치 연극 같았다면 "아이리시맨"은 다큐멘터리의 느낌이 강합니다. 이는 실존 인물이 쓴 자서전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위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누군가의 고백에서 오는 힘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게다가 그 고백의 어조가 영화의 외적 측면, 배우들과 감독의 연륜과 합쳐졌을 때 영화는 엄청난 무상감을 가져옵니다. 이 무상감은 아주 좋은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입니다. 

     

    "아이리시맨"과 마찬가지로 "조디악"도 어떤 무상감을 가진 영화입니다. 

     

     

     

    영화는 스릴러와 드라마, 심지어 코미디까지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연쇄 살인이라는 소재는 전쟁이나 참사와 같이 사건 자체로 사람들에게 큰 흥미를 줍니다. 그러나 보통의 연쇄 살인을 다룬 영화처럼 "조디악"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와의 극적인 한 판 승부를 묘사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조디악"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영화입니다. 몇 개의 수수께끼 같은 흔적을 가지고서 유령 같은 살인마를 추격하는 과정은 마치 새벽의 긴 안갯길을 헤매는 것처럼 흐릿하고 습합니다. 저는 살인마를 추격한 적은 없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이유 모를 기시감을 느낍니다. 어쩌면 삶의 여정에는 이런 종류의 흐릿함이 언제나 동반하고, 그렇기에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고 추측합니다.

     

    자칫 산만할 수 있는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조디악"은 매끄러운 서술과 특유의 거리감으로 영화의 완급을 멋지게 조절합니다.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중에서 "파이트 클럽"을 인생 영화로 뽑는 사람이 많지만 저는 "조디악"에서 보여준 핀처의 냉정함이 더 좋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조디악"에는 봉준호 감독의 상이한 영화 "살인의 추억"을 강하게 연상시키는 몇 장면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역사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저는 모던 클래식 영화를 보면서 미래에 그려질 지금 시대의 분위기를 상상해봅니다. 지금 시대를 배경으로 저는 여러 상승과 하강을 겪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끝에서 문득 숨이 막힐 때면 저는 같은 순간을 겪고 있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결국 저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고독합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보는가 봅니다.

     

     

     

    '2021 영화 연말 결산(4), 미국 영화 샐러드: 파격_용서받지 못한 자, 버드맨, 빅 쇼트, 그린 나이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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