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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산 만경강_옥구_중앙동 자전거 코스
    공간/국내 2022. 4. 26. 21:50



     




    2021년 8월 중순, 그동안 했던 작업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작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여러 걱정과 우려가 일었고 이를 달래기 위한 각오로 마음이 복잡했던 그 무렵에 〈여름의 끝자락〉이라는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피아노 선율과 낮고 힘 있는 목소리로 차분하게 구성된 곡은 격정의 계절이 끝나가는 것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만 같은 아름다운 곡이었습니다. 해질 무렵 고속버스에서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듣던 그 순간부터 저는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마음먹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뒤 8월의 마지막 일요일 자전거를 타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름이 끝나갈 무렵 혼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밝고 적막한 도로를 달리는 동안에 어떤 기로, 봄의 생기가 죽음처럼 무더운 순간들을 지나고 나서 어느덧 성숙한 풀내음으로 바뀌어가는 그 기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가 끝나가는 여름을 기억하는 방식입니다. 자전거 도로는커녕 인도마저 따로 없는 지방도를 달리다가 월연 교회까지 가면 비로소 자전거를 타기 좋은 길이 나옵니다. 아직 자동차 출입이 금지된 도로를 따라 정남향으로 1km 정도를 달리면 만경강 자전거길에 들어섭니다.


     




    간척이 완전히 끝난 구역이 아니라서 이 구간의 자전거 도로는 관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직 도로가 개통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차량이 없는 도로를 따라 달렸습니다. 하제에서 도로가 끝날 때까지 만경강을 따라 난 10km의 구간은 경사가 전혀 없으면서 동시에 지평선과 수평선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도로입니다. 긴 구간을 달리는 동안 사람이나 차량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아주 가끔씩 자전거를 타는 사람만 마주칠 수 있을 뿐입니다. 구름이 약간 낀 날씨임에도 햇볕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고글과 버프가 필요합니다. 오후의 공기가 많이 뜨겁지만 불쾌하기보다는 계절이 끝나감에 아쉬울 따름입니다. 강바람을 맞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달렸습니다.


     




    물을 빼내는 배수문이 군데군데 있어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기에 알맞습니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그늘을 만들고 의자도 잘 구비된 편입니다. 저는 규모가 큰 제2 배수문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제2 배수문은 관광 시설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에 전망대와 경사로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이곳의 전망대는 근처에 산이나 언덕이 전혀 없기 때문에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시설이기도 합니다. 현재 시설은 전혀 운영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2층까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 전망대가 드리운 그림자 아래에 있는 나무 계단에서 준비해 온 음식과 과일을 먹었습니다.


     




    전망대에서는 새만금 안쪽에 있는 다리인 커다란 만경대교가 보입니다. 리버스 아치교로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하늘을 향해 그리는 거대한 호와 같은 구조물이 독특합니다. 저는 제2 배수문 2층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커피를 가져왔으면 더 좋았겠습니다. 사진을 찍고 생각을 하는 동안 딱 한 명의 사람만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까지 사람이 없는 곳은 아니었는데 아마도 더운 날씨 탓에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경강을 따라 난 도로가 끝나는 구간에는 차량 캠핑을 즐기는 두 가족이 있었습니다. 부모들은 느긋해 보였고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습니다. 공사 중인 흙길을 따라 잠깐 강변에 내려갔다가 다시 하제포구로 유명한 하제 방향으로 갔습니다. 북쪽의 하제까지 가는 올곧은 도로는 군산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의 궤적과 나란합니다. 이 비행기는 아마도 제주도에서 오는 비행기일 것입니다. 비행기 착륙 시간이 맞는다면 비행기와 함께 달리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날은 유독 많은 죽음의 흔적과 마주했습니다. 집에 와서야 사체가 찍힌 것을 확인한 사진도 몇 장 있었습니다. 반듯하게 포장된 도로 위의 죽음에서 낯선 느낌을 받습니다. 고라니와 새의 사체뿐 아니라 뱀의 사체도 정말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여름은 이렇게 끝나고 있었습니다.

     

     




    하제와 군산 공항 사이에는 거대한 규모의 미군 기지가 있습니다. 군산공항까지 가기 위해 짧지 않은 시간을 달리는 동안 미군 기지의 벽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적막한 기지 밖을 따라 달리니 이전에 미군 기지 내부를 방문했을 때와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지의 정문까지 가면 편의점과 식당이 있는 마을이 나옵니다. 편의점에 들러 탄산음료 두 캔을 사서 마셨습니다. 기지 근처의 가게는 한국어 간판보다 영어 간판을 훨씬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주한 미군의 영외 거주 시설도 볼 수 있었습니다. 부대 앞에는 몇 개의 부대찌개 식당이 있습니다. 


     




    군산 공항과 미군 기지는 활주로를 공유하기 때문에 바로 근처에 위치합니다. 공항은 작고 조용합니다. 1999년에 방문한 이후로 처음이었습니다. 천천히 주차장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옥구저수지는 규모가 꽤 큰 저수지입니다. 옥구저수지의 제방은 오래전에 생긴 길이라 자전거를 타기에 아주 좋은 길은 아니지만 꽤 근사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길입니다. 한쪽으로는 넓은 논이 펼쳐지고 다른 한쪽으로는 큰 물이 펼쳐지는 풍경을 보며 달렸습니다. 얼핏 보면 꼭 평평한 초원처럼 느껴질 정도로 물 위에는 무언가 가득 자라 있었습니다. 2km 정도 제방 위의 도로를 따라 달리니 자동차 전용도로의 인터체인지인 공항교차로가 나왔습니다. 저는 직진을 해서 산북동 방향으로 갔습니다. 아메리카 타운에 들르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메리칸타운은 군산에 주둔 중인 미군을 상대하기 위해 1969년 한국 정부의 주도 하에 출범한 유흥가입니다. 이곳 산북동에 아메리칸타운이 조성되기 전에는 영화동에 위락 시설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군산 시가지에 있던 기존의 위락 시설들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논 한가운데에 있는 산북동에 모아서 만든 일종의 신도시인 아메리칸타운은 클럽과 식당뿐 아니라 환전소, 세탁소, 미용실은 물론 500명 정도의 여성 종사자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완전한 자립형 마을입니다. 이국적인 고딕 풍의 간판들로 장식된 세탁소, 환전소 등을 지나 타운 안으로 들어가면 언덕을 따라 위락 시설이 줄지어 있습니다. 언덕 바로 아래에는 종사자 거주 시설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폐허가 된 낡은 슬레이트 지붕들이 현대화된 위락 시설들의 간판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현재 아메리칸타운에 내국인 종사자는 없고 소련이 붕괴된 이후 유입된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계열의 종사자들과 필리핀 계열의 종사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인적 드문 시골에 유흥 시설이 밀집한 모습이 마치 방비엥의 유흥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는 마치 관공서처럼 생긴 건물이 있는데 지금은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간척지를 논으로 개간한 곳에 둘러싸인 작은 언덕에 위치했기 때문에 아메리카 타운의 꼭대기에서 주위의 평야를 관망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자전거로 언덕을 오르내리는 동안 아직 불을 켜지 않은 업소에서 젊고 덩치 큰 남자가 나와서 가게 앞에 서서 전화를 합니다. 저는 멀리 서쪽으로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산북동 시가지에 진입하자 해가 거의 떨어졌습니다. 저는 미룡동을 거쳐 내항까지 갔습니다. 그 구간의 길은 좁은 데다가 아주 약간의 고저가 있습니다. 동국사를 넘어 이성당 옆 근대쉼터에서 조금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후 대명동 골목을 따라 예전 군산역 앞까지 갔습니다. 군산역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높다란 아파트들이 생겼습니다. 그곳에 갈 때마다 어딘가 낯선 기분이 들고는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겠지요. 이후 월명로와 남북로를 따라서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땀에 젖다 못해 머리카락이 뻑뻑할 지경이었습니다 

     

     

     

     

     

     

    이날 탄 구간은 약 52km 정도의 길이입니다. 자전거 도로로만 다닌 것이 아니라 구시가지를 많이 돌아다녀서 자전거를 타기에 썩 좋은 코스는 아니었습니다. 만경강 부근의 코스는 미군 부대 근처로 가기 전까지 가게는커녕 민가조차 없는 간척지이기 때문에 미리 마실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차량 통행이 많은 지역은 아니지만 개중에는 차도만 있는 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해 여름이 끝났습니다. 물론 9월과 10월 초에도 더운 날은 지속되었지만 제게는 2021년 8월 29일이 여름의 끝이었습니다. 10월 중순을 지나자 낮에도 찬바람이 불며 가을이 왔고 곧바로 겨울마저 따라왔습니다. 겨우내 몇 푼의 돈을 벌고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잔의 커피를 마시고 몇 병의 술을 마셨습니다. 전년에 비교해 꽤나 추운 날들이 지나는 동안 가슴속에서 꺼내지 못한 말과 행동과 생각들은 얼어붙은 채 땅에 곤두박질치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추위가 오가는 동안 다시 봄이 왔습니다.

     

    오늘 집 밖을 나서자 공기가 완연하게 초여름의 그것을 띠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 열기는 머지않아 다시 여름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명백하게 입증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여름이 시작되면 죽음 같은 열기가 아스팔트 위를 가득 채우고 길가의 풀들이 그 열기 속에서 무럭무럭 키를 키울 동안 어느새 여름은 끝나가고 죽어서 도로 경계석에 누운 고라니의 몸이 썩기 시작할 무렵 제 이어폰이나 스피커에서 여름의 끝자락이 나올 것까지는 확신할 수 없겠지만요.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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