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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가 되면 무대를 떠나야 한다_《소리와 분노》
    공간/독서 2022. 5. 28. 00:05

     

     

     

     

     

    낯설게 보기

     

    제가 다닌 학교 1학년 과정에 Residential College(RC)라는 교육 제도가 있었습니다. RC 교육 이수를 위해서는 자기주도활동이라는 0.5학점짜리 수업을 2개 들어야만 했는데 P/NP로 성적이 처리되는, 그리 비중이 크지는 않은 수업이었습니다. 첫 학기에 수강한 그림 그리기 수업의 첫 번째 시간은 인물을 뒤집은 채로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는 인물을 그릴 때 모양을 관찰하는 대신 자신이 생각하는 눈, 코, 입을 떠올리며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인물의 얼굴을 뒤집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생각하던 기존의 눈, 코, 입의 관념은 붕괴하고 그렇게 환기된 시선은 관찰하는 눈, 코, 입을 가치중립적인 선들의 관계로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은 일종의 낯설게 만들기입니다. 문학이나 연극에서도 이러한 의도적으로 낯설게 만들기가 존재합니다. 모더니즘 소설로 분류되는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이러한 낯설게 만들기를 통해서 상실에 대한 감각과 관념을 재정의합니다.   

     

    《소리와 분노》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인습적 가치에 매몰된 한 일가의 몰락을 다루는 소설입니다. 저는 독서라는 행위에는 우열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높은 독해 능력이 필요한 책 분명히 존재합니다.소리와 분노》 분명 높은 독해 능력이 필요한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독해 능력이란 《역사란 무엇인가》나 《혁명의 시대》, 또는국가: 정체》같은 책을 읽을 때 필요한 복잡하고 유기적인 문단을 해석하는 능력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 책을 읽을 때 필요한 능력 연대기적인 인과와 논리에 대한 성급한 탐구를 잠시 멀리한 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과거의 파편들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여러 상을 탄 작가의 명성이나 지적인 독자들의 추천이 이러한 몰입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렇듯 소설은 어둠에서 밝음으로의 이행'의 형식을 지니는데 이러한 구조 덕분에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가 더욱 크게 다가올뿐더러 읽는 행위 자체를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소리와 분노》의 구성 

     

    《소리와 분노》는 4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분명 이 책을 초반는 난해합니다. 고전적인 소설이 쓰인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1. 1928년 4월 7일, 일명 벤지 섹션  

    지적장애인 벤지의 시점으로 서술됩니다. 이 부분에서는 언어의 순수한 시각화를 즐길 수 있는데 마치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피부로 느끼는 감각이 커지는 것처럼 벤지의 시선에서 추론과 서사를 배제하니 도리어 언어의 시각화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벤지를 천덕꾸러기 애완견 수준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벤지의 눈치를 거의 보지 않고 말을 주고받으로 에 엿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벤지는 시간을 구분하지 않으므로 그가 서술하는 사건은 시간을 초월하여 동시에 존재합니다. 이로 인해 독자들이 의도된 혼란에 빠지지만 벤지를 돌보는 사람의 구분을 통해 벤지가 서술하는 시간대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흑인 청소년인 러스터는 서른세 살 현재의 벤지를 돌보는 사람이고 티피는 벤지의 청소년기, 버시는 벤지가 유년기일 때 돌봐준 사람들입니다. 작중 벤시는 거세를 당하는데 이 사실은 벤지 섹션에서 묘사되지만 그 묘사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이슨 섹션에서 제이슨의 언급이 필요합니다. 책을 끝까지 읽은 후 벤지 부분을 다시 읽으면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1910년 6월 2일, 일명 퀜틴 섹션

    퀜틴의 하루입니다. 각 장이 1928년을 제목으로 하는데 반해 퀜틴이 서술하는 2장은 1910년입니다. 소설의 시점에서 퀜틴은 수업에 빠지고 기숙사를 나와 근방을 거닐며 이민자나 다른 기숙사 학생들과의 겪는 여러 사건을 묘사하지만 서술자인 퀜틴은 캐디가 겪은 몇몇 성적인 사건에 사로잡힌 상태이기 때문에 과거의 사건들이 계속 의식에 침입합니다. 엄마의 정서적인 사랑을 충분하게 받지 못한 퀜틴은 마찬가지인 처지의 여동생 캐디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퀜틴은 자신의 결핍을 여동생 캐디에 대한 사랑으로 눈가림해왔지만 캐디가 동네 남자와 첫 성관계를 가지게 되면서 퀜틴은 괴로움에 빠집니다. 여러 남자들과 성관계를 가지던 캐디는 임신을 하고, 그 임신과는 무관한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자 퀜틴은 이를 죄악시하고 자신과 캐디와의 근친 관계라는 더 큰 죄를 통해 캐디의 죄를 덮고자 하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몰락하고 있는 전통과 인습의 가치에 대한 퀜틴의 집착은 지적장애인 동생 벤지 몫의 목초지(pasture, 시편 23편에 등장하는 목자가 인도하는 공간을 상징하며 벤지를 무고한 어린양에 빗대게 만드는 단어 선택이라고 옮긴이는 밝히고 있습니다.) 팔아 하버드에 다니고 있는 자신의 상황과 결부되어 퀜틴을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합니다. 존재가 죽음을 부정하는 것이 부질없는 것처럼 퀜틴의 갈망은 본질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퀜틴의 순결에 대한 집착을 토대로 이상을 그렸고 이러한 이상은 현실과 유리되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퀜틴은 할아버지 대부터 내려오던 시계를 부수지만 이는 퀜틴에 손에 상처를 입힐 뿐 지나간 시간에는 관여할 수 없습니다. 2부는 소설 처음의 아침 부분과 같이 퀜틴이 밤중에 기숙사 방을 나서며 끝이 납니다. 이날 밤 퀜틴은 자살합니다. 

     

    3. 1928년 4월 6일, 일명 제이슨 섹션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제이슨의 시점으로 서술됩니다. 제이슨의 서술부터 독자는 벤지와 퀜틴 섹션에서 일어난 사건의 윤곽을 명확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퀜틴의 괴리된 이상이 퀜틴을 죽음으로 이끌었다면 제이슨은 너무나 현실에 얽매인 상태입니다. 제이슨은 항상 계산하고 의심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서 투자는 실패하고 캐디의 딸은 돈을 챙겨 도주합니다. 제이슨의 처절한 실패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이성과 합리의 실패를 연상시킵니다. 포크너가 제임스의 모습을 유독 냉정하게 그려내는 까닭은 아마 작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합리라는 틀 안에 갇힌 채 실패를 겪기 때문이라고 짐작합니다.  

     

    4. 1928년 4월 8일, 전지적 작가 섹션

    딜지 위주로 서술이 진행되기 때문에 딜지 섹션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책의 순서에서도, 극 중 시간에서도 가장 마지막 부분입니다. 사건의 마무리를 목격하지 못하더라도 책이 끝났다는 확실한 느낌을 주는 데에는 이러한 순서 배치와 관련이 큽니다. 소설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포크너의 노련한 기술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콤슨 가의 사람들과 대조되는 딜지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에서 작가가 지닌 휴머니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딜지의 기독교적 세계관은 명백하게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러한 한계 덕분에 콤슨 가의 몰락을 지켜보는 딜지의 눈물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집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돈을 가지고 도망간 조카를 잡는 데 실패한 제이슨이 돌아오는 길에 마차 방향 때문에 울부짖는 벤지를 목격하고 마차를 몰던 러스터에게 화를 내며 방향을 직접 바꿉니다. 그러자 벤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고, 소리는 잦아듭니다.  

       

     

     

    콤슨 가의 삼 형제, 그리고 캐디 

     

    많은 창작물들처럼 《소리와 분노》상실과 미련에 대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콤슨 가의 인물들이 맞이하는 상실은 캐디라는 형태를 지닌 채 찾아옵니다. 한때 벤지의 목초지였지만 이제는 골프장이 들어선 장소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캐디를 찾을 때마다 벤지는 자신의 누이 캐디를 떠올리며 과거의 기억에 빠져듭니다. 벤지는 현재와 과거를 구분 짓지 못하는 상태로 일차원적인 충동에 시달리며 장기적인 방향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퀜틴은 현재와 과거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퀜틴은 동생 캐디를 사랑하지만 퀜틴의 변화, 이성을 만나고 성관계를 한다는 사실을 견뎌내지 못하며 오로지 과거에 매몰된 채 현재에서는 실패만 겪으며 의미를 도출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미련은 퀜틴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결국 퀜틴은 자살하게 됩니다. 셋째 제이슨은 미래를 계획하고 상황을 통제하려고 노력합니다. 곡물 가격을 예측하려고 하고 캐디의 딸 퀜틴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스스로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고 여기는 믿음에 기반합니다. 캐디의 남편이 약속했던 일자리를 얻게 되지 못하는 것을 계기로 제이슨은 캐디가 자신의 딸과 어머니에게 보내는 돈을 가로채 왔지만 결국 캐디의 딸이 돈을 모두 챙겨서 제이슨이 그토록 싫어하는 악단 단원과 도피하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남은 그들은 극적인 사건 없이 미지근하게 몰락할 것입니다.  

     

    이렇듯 콤슨 가의 네 남매에서 캐디를 제외한 세 명은 각 장의 서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직접 서술자로 참여하는 벤지, 퀜틴, 제이슨과는 다르게 캐디는 오로지 인물들의 언급을 통해서만 묘사됩니다. 이것은 포크너가 캐디를 보호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마지막 장에서 일인칭이 아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관찰한 딜지의 경우와 같습니다.  

     

    포크너는 명백하게 앞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작가입니다. 포크너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 과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작가가 말하는 진실은 1차 세계대전이 불러일으킨 진보하는 문명에 대한 의구심이나 당시 미국 남부가 처한 사회 경제적 몰락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모든 존재는 벤지처럼 현상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뿐이거나, 퀜틴처럼 과거의 생각에 사로잡힌 상태이거나, 제이슨처럼 계획을 세우고 손익을 계산하는 상태일 뿐 결국 그 끝은 죽음으로 정해져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상실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자세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떠안게 됩니다. 작가 또한 그 해답을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딜지를 묘사한 부분에서 작가가 품고 있는 생각을 부분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포크너의 단편 〈저 석양〉과의 관계 

     

    〈저 석양〉 24살의 퀜틴이 15년 전 흑인 하인인 낸시와 관련된 일을 회상하는 구조입니다. 《소리와 분노》에서는 퀜틴이 19살에 자살하기 때문에 〈저 석양〉과 동일한 시간으로 읽는다면 퀜틴의 시간에는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이종문의 《〈저 저녁 해〉에 드러난 사회적 의미》의 5페이지에 달린 주석에 따르면 포크너 역시 카울리에게 이러한 모순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에 포크너는 “나는 가계나 연대기적인 표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대답을 합니다. 즉 각 작품에서 등장하는 퀜틴의 나이를 일치시키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흥미롭게도 《소리와 분노》의 벤지 섹션과 퀜틴 섹션에서 도랑 속의 낸시의 뼈가 몇 번 묘사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시체를 파먹는 대머리 수리가 낸시의 옷을 벗겼다는 캐디의 언급 때문에 처음에는 〈저 석양〉의 주인공 낸시인 줄 알았으나 책을 모두 읽은 후 다시 한번 벤지 섹션을 차분하게 읽어보니 로스커스가 도랑에 빠진 낸시를 총으로 쏘았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부상을 입은 말로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낸시의 옷이라 함은 말의 가죽을 말한 것이겠지요. 〈석양〉에서는 콤슨 씨의 손에 이끌려 낸시의 집을 빠져나온 퀜틴, 캐디, 제이슨이 도랑을 건너가며 끝이 나며 에서 낸시가 겪게 될 일은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있습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이라는 작품에 〈저 석양〉의 낸시가 등장한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그 작품을 읽지는 않았습니다. 

     

     

     

    몰락을 뒤집어쓴 허무 

     

    책을 모두 읽은 후 제목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맥베스》유명한 독백에서 따왔다는 이 책의 제목은 허무적인 정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무대에 올라 법석을 떨다가 사라지고 마는 존재일 뿐이라는 뜻이지요. 《소리와 분노》가 담은 콤슨 집안의 몰락은 노예 경제라는 구시대적인 체제에 기반했던 미국 남서부가 지니고 있는 원죄에만 국한되는 주제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존재가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진실한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콤슨 가의 이야기를 존재의 근원적인 상실로 확장할 때 비로소 이야기는 보편적인 진실에 다가갑니다.  

     

    시간이라는 저는 이러한 정서에 공감하는 사람으로서 폐허가 된 구도심과 아무도 찾지 않는 유원지, 풀이 무성하게 자라난 간척지의 벌판을 찾아가는 것을 즐깁니다. 한때 놀이기구의 컴프레셔 소리와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가득했던 곳에 바람에 흔들리는 풀이 스치는 소리와 새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현실이 주는 무상감을 느끼며 저는 이유 모를 편안함, 혼자가 아니라는 막연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무상감은 천부적 평등에 관한 것입니다. 흑인 특유의 말투를 활용하며 청중을 올리는 시고그 목사의 소리와 단지 마차가 왼쪽으로 돌았기 때문에 울부짖는 벤지의 소리는 분명 다른 종류의 소리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소리의 범주에 있습니다. 분노라고 어디 소리와 다르겠습니까.  

     

     

     

    마치며 

     

     

     

    문학동네에서 출판한 책을 읽었습니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글씨 색을 바꾸거나 문단 전체의 온점을 생략하거나 명사를 쓰는 대신 그에 대응하는 그림을 그린 부분이 있습니다. 옮긴이 공진호의 주석과 책 마지막 해석 덕분에 《소리와 분노》를 더 풍성하게 향유할 수 있었습니다. 

     

     

     

    몇 가지 좋은 글을 소개합니다. 

     

    소설을 언어와 시간, 무의식의 세 개의 축으로 바라보는 글입니다. 풍부한 인용과 주제 의식의 해석이 좋습니다.   

     

    이 책의 옮긴이가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입니다. 책의 내용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신뢰도 있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서가 아닌 문학이라는 지면의 한계 때문에 미처 전부 옮길 수 없었던 원문이 지닌 풍부한 은유를 즐길 수 있습니다.  

     

     

    EBS 라디오의 소개글입니다. 소설을 읽기 전후로 배경과 내용을 전체적으로 관망하기에 좋은 글입니다.   

     

    영미 문학관 - [0728-0816] 윌리엄 포크너 - 소리와 분노

    * 정보제공: 문학동네 미국 남부의 명문가 콤슨 가의 20여 년에 걸친 정신적.계급적 몰락을 통해, 남북전쟁 이후 서서히 와해되어간 남부의 사회상을 그려낸 이 소설은, 실험적인 서술기법, 강렬

    m.ebs.co.kr: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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