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카인드 후기

휴먼카인드

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 후기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는 이 책이 성선설의 복음서가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책은 선과 악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대신 책은 생존과 번식에 대해 언급할 뿐입니다. 작가는 다른 인간에게 친절한 개체가 생존에 유리했고 우리 또한 친절한 개체의 후손이라는 주장을 하고서 이에 대한 근거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제시합니다. 분명 논리의 비약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농경 생활의 시작을 실낙원에 비유한 부분이나 현재의 미디어가 조장하는 공포에 대한 비판은 분명 논쟁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논쟁점을 살펴보는 점도 이 도발적인 책을 읽는 재미의 일부입니다.

인간은 공격적인 개체가 아닌 친절한 개체이다, 라는 책의 주장을 접한다면 아마 작가가 순진한 이상에 사로잡혔다는 의심을 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시대의 사람은 낙관적인 전망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냉소적인 현실주의 자체를 전복시킵니다.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전망을 선호하는 현상의 원인을 분석함으로서 우리가 무언가를 낙관한다는 것에 대해 가진 공포심을 덜어줍니다. 우리가 어떤 현상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거둘 때에는 그로 인해 손해를 입는 상황에 대한 비이성적 공황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합리와 낙관에 대한 신뢰는 분명 양립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작가는 공감보다 연민을 강조합니다. 인류가 이글거리는 공감과 연대를 통해 전쟁 병기로 거듭났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보편적 연민의 강조에 동의합니다. 제가 지닌 공감과 연대의 명백한 한계를 은밀하게 목격할 때마다 저는 좌절했습니다. 공감은 나와 닮은 존재에게만 발휘할 수 있는, 에너지 소모가 매우 큰 과정이기 때문에 명백한 한계를 지닙니다. 반면 연민은 공감보다 폭넓게 발휘될 수 있습니다. 작가는 공감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저에게 있어 공감은 에로스적인 감정이고 연민은 아가페적인 감정입니다. 저는 대상과 동화되는 감정을 배제하는 침착하고 서늘한 응시가 가진 힘을 믿습니다.

책에 언급된 여러 사례를 살피다보니 어쩌면 위에서 언급한 모든 것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은 일과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럴 때면 저는 책의 도입부를 떠올립니다. 도입부에는 플라시보 효과와 노시보 효과에 대해 적혔있는데 어쩌면 이 책은 우리 마음 속 노시보를 몰아내려는 새로운 종교 서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기존의 종교는 절대자의 눈이 우리의 믿음을 지켜보고 기록하며 상과 벌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종교는 구원을 믿는 종교가 아닌 믿음이 곧 구원인 종교입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저는 작가는 제안한 새로운 현실주의에 대해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비관적인 시선을 현실적인 시선이라고 평가해왔습니다. ‘결국 돈이 최고니까요.’ 또는 ‘사회는 지옥이니까요.’라는 말을 하는 아이들은 현실적인 인생관을 가졌다고 칭찬받아 왔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이야말로 어른의 칭찬을 바라는 착하고 여린 아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순수하구나, 라는 말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여린 아이들 말입니다. 저는 제가 어떤 아이인가 생각합니다. 저는 ‘순수하다’ 라는 평가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군산 시립도서관 (대여)
20211117(~256p)
20211119(~486p)
20211120(~587p)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