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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영화 연말 결산(2), 한국 작가주의 영화의 시선에 비친 공간_애니멀 타운, 명왕성, 아기와 나, 유혹

한동혁 2022. 1. 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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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 작가주의 영화의 시선에 비친 공간

 

 

 

애니멀 타운, 명왕성, 아기와 나, 유혹

 

 

 

2021년은 한국 영화를 그렇게 많이 감상하지는 않았습니다. 평이 괜찮은 몇 개의 영화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기억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사랑하는 공간을 담고 있는 한국 영화에 대한 탐색은 멈출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묶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저는 한국의 독립 영화를 좋아합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독립 영화가 아니더라도 촬영지의 특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영화, 촬영 장소를 사실적으로 담은 영화를 좋아합니다. 뒤에서 따로 다루겠지만 이것이 제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애니멀 타운"이라는 영화를 선택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제목과 포스터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왓챠플레이어는 이 영화를 제게 꾸준히 노출시켰고 저는 어느 날 문득 이 영화를 선택했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삽입된 성교에 대한 유물론적인 관찰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저는 포장의 중요성을 잘 압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포장지는 안의 구성물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투명한 비닐 포장지, 모양이 제멋대로 변할지언정 우리의 시선 말고는 그 무엇도 침투할 수 없는 투명한 비닐 포장지와 같습니다. "애니멀 타운"의 차갑고 담담한 시선에 담긴 한국은 제게 다른 의미의 충격이었습니다. 엿보는 자의 감정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측면에서 "애니멀 타운"은똥파리"의 후배이자박화영의 선배 격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애니멀 타운"이 뒤의 두 영화와 차이를 보이는 점은 이 영화가 포근하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저는똥파리"박화영을 볼 때에 제가 기댈 수 있는 벽, 작은 숨구멍과도 같은 그 벽을 찾아내고는 했습니다. 그러나애니멀 타운"에는 등을 기댈 벽이 없습니다. 영화는 거의 정적이지만 동시에 불안합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토네이도 경고가 있었던 날의 다음 날 아침 같은 분위기와 비슷합니다.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애니멀 타운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죄인을 단죄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의 도시가 그 죄인을 차로 들이받습니다. 우리는 비닐 포장 안을 지켜볼 뿐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상황을 절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투명하고 질긴 비닐이라도 약간의 온기는 전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애니멀 타운"과는 달리 "명왕성"은 죄악과 단죄에 초점을 맞춥니다.

 

 

 

대부분이 학창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학교 소재의 영화는 언제나 사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명왕성"에서 벌어지는 죄악과 단죄의 과정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일단 한 번 꺼낸 칼은 결코 어쭙잖게 휘두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 자극적인 소재들이 쉼 없이 등장하는데 이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비현실성과 진부함은 학교라는 우리 기억 속의 공간이 포근하게 감싸 안습니다. 영화에 마음을 연다면 얼핏 작위적인 대사나 플루토에 대한 은유를 거칠게 붙들어 매려는 시도마저도 매력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행복을 느꼈습니다. 물론 영화의 어설픈 은유나 본인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결말 때문에 행복했던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이 영화는 공간입니다. 한적한 교외에 위치한 학교, 불 꺼진 기숙사 복도, 학교 아래의 지하실 등을 보면서 저는 과거를 떠올렸습니다. 특히나 송도 채석장의 황량한 풍경을 보면서 영화를 잘 골랐다고 느꼈습니다. 

 

역시 이런 점에서 저는 영화 "아기와 나"의 카메라에 비친 도시의 모습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무엇을 찾을까요?

 

 

 

젊은 아내를 찾는 젊은 남편의 이야기라는 설정은 이 방황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듧니다. 이 매력은 변영주 감독의 "화차"를 볼 때 느꼈던 매력과 비슷합니다. 저는 한 명의 창작자로서 어쩌면 이 모든 인물 설정은 방황에 당위성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합니다. 배우 이이경과 아기가 함께 있는 몇몇 장면은 훌륭했습니다. 전체적으로 배우들이 지닌 매력이 뛰어납니다.

 

영화 "유혹" 또한 인물의 방황을 다룹니다. 그러나 "유혹"의 배경은 정주하는 공간이 주가 됩니다.

 

 

 

저는 감정적 포르노보다는 육체적인 포르노를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후자가 전자보다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유혹”은 넷플릭스 기준 드라마 장르로 구분되지만 포르노로서도 손색없는 작품입니다. 등장인물들이 거주하는 집이 설정상 주택이지만 모두 펜션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집 안에 비상구 표시가 붙어 있거나 형편없는 배선을 보이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그런 적나라한 부족함에서 매력을 느낍니다. 그 촬영과 제작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몇 번의 성교 장면은 외로운 공간을 짜 맞추기 위한 점도 높은 접착제처럼 느껴집니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장면과 커피숍 2층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 버려진 놀이공원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좋았습니다. 

 

 

 

2021년에 감상한 한국 영화를 돌아보니 문득 "철원기행"을 떠나고 싶어집니다. 연민이 교조를 이겨낼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면서도 가끔은 잎사귀치과의 창틀에 걸터앉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저도 한국의 모습을 열심히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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